오상조 Oh, Sang Jo ‘자연•인간, 공존의 공간-당산나무’ 展
[ 전시 개요 ]
오상조 사진전 [자연•인간, 공존의 공간-당산나무]展
2018년 09월 05일(수) - 09월 18일(화)11am - 7pm
갤러리 나우 -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9, 관훈동 성지빌딩 3F
02-725-2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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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서문]
오상조의 작업들은 일관성 있게 민족애를 바탕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맥을 이어가기 위한 여러 시리즈의 작업들을 해 왔다. 그 중의 하나로 <당산나무>시리즈는 그의 모든 작품들 중에 가장 중심축에 있다.
‘당산나무’는 긴 시간의 역사를 함께 하고 옛사람들의 정서를 오늘까지 이어주게 되는 정신적인 끈이기도 하다. ‘당산나무’는 종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연속적인 역사의 이어짐이자, 횡으로는 어른과 아이, 이 동네사람과 저 동네 사람들의 연결의 축이기도 한 교감의 공간이다. 즉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마을사람들의 삶의 중심에 있었던 초월적 공간이다. 그곳은 예의범절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는 산 교육의 장이기도 했고, 모든 이들의 쉼터이자 염원의 공간이기도 했다. 즉 자연과 인간, 영혼이 밀도 있게 만나는 곳 바로 초월적 소통의 공간인 것이다.
대부분 우리의 머리 속에 간직된 ‘당산나무’는 나무그늘 아래에서 보게 되는 거대한 기둥 같은 나무와 숲과 같이 해를 머금고 팔랑이는 잎새들, 그리고 바람, 거기에 계시던 어르신들의 느른한 모습들로 소소하게 기억으로 존재 할지도 모른다. 오상조의 <당산나무>는 멀리서 동네 어귀쯤 들어오면서 눈에 들어오는 당당한 모습, 즉 ‘당산나무’의 전형적 모습으로 촬영하기도 했고, 마치 속살을 드러내듯 깊은 교감으로 가까이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멀리서 촬영한 오상조의 <당산나무>는 마치 아버지의 든든함과 하늘과 땅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데 반해, 가까이 촬영한 작품들은 우리네 어머니의 한결 같은 가족을 위한 염원의 모습 즉 자연 가운데 한없이 작은 인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35년째 촬영해온 오상조의 당산나무는 바로 그 자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상조의 당산나무는 사람 냄새,
인간의 그 체취를 풍긴다. 그 모습은 오상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작업이다. 이는 오랜
동안의 촬영으로 인한 ‘당산나무’와 영적으로 만나는 교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리라. 그가 대형카메라, 젤
라틴실버프린트를 고집 하는 것도 바로 마음으로 담는 방식의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와는
썩 잘 어울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오상조의<당산나무>는 원형으로의 복원을 통한 미래대안, 현대인들의 마음으로 그리는 人間愛, 영원한 안녕의 염원과도 하나로 엮어지는 흐름이랄 수도 있겠다.
이번 전시는 천천히 오랜만에 돌아와도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동구 밖 당산나무의 그 마음으로 준비한
전시이다. 그의 풍부한 아날로그의 계조 속에 드러날 <자연•인간, 공존의 공간-당산나무>展을 통해서 길
고 긴 생명력의 이어짐, 위로와 안식, 그리고 그의 반평생 동안의 빛나는 작가 정신과 새롭게 만나는 자
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갤러리나우 이순심
[평론글]
살아 있는 토테미즘의 현장
-자연, 신, 인간 공간의 중심, 당산나무
문순태 소설가
고향을 생각하면 당산나무가 먼저 우뚝 떠오른다. 당산나무는 언제나 동구 밖에 높고 굳건한 모습으로 서서 우리를 기다린다. 긴 여행을 끝내고 고향에 첫발을 들여놓는 순간에도 우리를 먼저 반기는 것은 동구 밖 당산나무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맞아 주는 고향 지킴이 당산나무. 오랫동안 정처 없이 떠돌다 지친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온 방랑자가 마을 앞 당산나무를 보는 순간 어떤 감정을 갖게 될까. 그는 온갖 고달픔 다 잊고 비로소 평화로운 마음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푸른 날개를 활짝 펴고, 의연하고 늠연한 자태와 넉넉한 가지들로 지친 삶을 포근하게 보듬어 안아 주는 당산나무. 땅속 깊숙이 뻗은 튼실한 뿌리는 우리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의 축적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기에 당산나무 밑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과 꿈꾸어야 할 것들이 있다. 마을 앞 당산나무를 바라보면 잃어버렸던 과거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고 싶고, 내일의 빛나는 꿈을 드높게 펼치고 싶어진다.
당산나무는 보통 오래된 느티나무나 팽나무, 소나무이다. 대부분 수령이 수백 년이나 된다. 우리는 당산나무를 보고 그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가늠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을 세운 다음에 마을을 지키기 위해 당산나무를 심었다.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곳에 마을을 세운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마을에 나무를 심고 정성을 다해 신목(神目)으로 가꾸었다. 이들 당산나무는 마을의 역사와 함께해 온 것이다. 기쁨과 슬픔을 마을과 함께 겪었다.
사진가 오상조는 오랫동안 우리 민족정서의 뿌리 찾기에 열정적으로 매달려 오고 있다. 특히 그는 우리 고장의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다. 지역의 후미진 곳에 오롯이 버려진 선인들의 숨결을 더듬으며 부지런히 그 유산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가 사진예술을 통해 오랫동안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작품 대상은 잊혀진 향토유물, 전통을 고수하고 살아가는 청학동 사람들의 삶과 문화, 마을 앞 석상, 화순 운주사의 불상 등 이었다. 그는 1981년 「 오상조 사진연구소 개관기념전」을 시작으로 30여 년간 열세번의 개인전과 세 권의 사진집을 펴냈는데, 이 작품들 속에 그의 예술정신이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그 동안의 전시회와 사진집을 통해서 본 그의 작품은 사실적이면서도 자연과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서로의 관계와 어울림 속으로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초기에는 선인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총체적이고도 다각적인 시각으로 보려고 했으나, 2000년 이후부터는 일관되게 당산나무에 집착하고 있다. 이는 그가 나무와 인간의 영적인 교감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집착하고 있는 당산나무는 단순한 자연으로서의 생명체가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살아온 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2000년에 내놓은 「동구 밖 당산나무」(눈빛)를 이번에 보완하여 다시 출간하게 된 것도 그의 당산나무에 대한 해석의 폭을 보다 넓혀 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진가 오상조의 렌즈에 비친 나무들은 하나같이 한국적 서사(敍事)를 담고 있다. 나무와 사람이 어울려 살아온, 오래된 역사의 구체적인 이야기, 그것은 곧 마을의 역사이기도 하고 우리 민족이 겪어 온 애환의 궤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의 당산나무는 모두 신격(神格)을 지니고 있다. 담양군 금성면 원을리 당산나무에는 ‘당산신위(堂山神位)’라고 새긴 석상이 세워져 있으며, 이밖에 장성읍 유탕리 상당산에는 ‘천용신(天龍神)’, 외당산에는 ‘외당신(外堂神)’이라고 표시해 놓았고, 유탕리 하당산나무는 ‘연신(鳶神)’이라고 써 붙여 있다. 연신이라 한 것은 날짐승을 위한 당산이기도 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당산나무는 인간의 쉼터일 뿐만 아니라, 날짐승의 쉼터이기도 한 것이다. 자연 속에서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배려인 것이다.
또한 오상조의 당산나무 작품에는 나무만이 피사체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무와 더불어 살아온 사람과 솟대, 선돌, 석상, 비석 돌탑, 당집, 열녀문, 초가, 당산 돌, 들돌, 정자 금줄, 서낭당, 남근석, 목장승, 석장승, 미륵불 등이 등장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주민들에 의해 모두 신성(神聖)한 가치를 부여 받고 있다. 강진군 대구면의 금줄이 쳐진 당산나무 옆에는 둥근 들돌이 있는데, 이는 이 당산나무 주변이 남자들이 들돌로 힘을 겨루거나 몸을 단련하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순천시 승주면 당산나무 옆에는 미륵석불이 모여져 있어 미륵부처와 함께 당산나무를 신격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러 곳의 당산나무 옆에 서낭당 돌무더기가 쌓여 있어 마을의 터를 지켜 주는 서낭신을 함께 모시고 있다. 옛 사람들은 당산나무에 서낭신이 붙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밖에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 당산나무에는 거대한 남근석이 세워져 있다. 이는 신령스러운 당산나무가 창조적 에너지를 충만 시켜 주고, 마을 아녀자들의 바람기를 막아 주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오상조의 당산나무 사진은 자연과 신과 인간이 한 공간에서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토테미즘(Totemism)의 단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안녕을 지켜 주는 신령스러운 나무임이 분명하다. 당산나무는 농경사회에서 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왔다. 오래 전부터 이 나무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풍요와 무병장수를 빌기 위해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마을 농사꾼들은 당산나무가 보이는 범위 안에서 농사를 지었고, 어부들 역시 당산나무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 안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놓였다. 당산나무가 그들의 안녕을 지켜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산나무 밑은 노동에 지친 농사꾼들의 시원한 쉼터였으며, 마을공동체의 중심이기도 했다. 크고 작은 마을의 일을 논의하는 여론의 광장이 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즐거움을 나누기 위한 유희의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배움터인 서당의 역할도 했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당산나무에 대한 가장 큰 경외감은 나무의 오랜 생명력에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당산나무에 무병장수를 빌었다. 당산나무처럼 튼실하게 오래 살고 싶은 염원 때문이리라. 이 때문에 당산나무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느티나무나 팽나무, 소나무를 어떤 나무보다 더욱 신성시 했다. ‘서서 천 년 누워서 천 년을 본다’ 는 느티나무나 ‘천년 소나무, 만년 팽나무’를 당산나무로 심는 것도 이 나무들이 오래 사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이루기 위해 연리목(蓮理木)을 심기도 했다. 두 당산나무가 서로 사이가 벌어지면 동네가 분열될 징조가 있다 하여 두 나무의 가지를 합쳐서 마을의 화합을 꾀했다. 충북 옥천에 있는 당산나무가 연리목인 셈이다. 또한 청룡, 백호 등 풍수지리를 따져 마을에서 허한 곳에 액을 막기 위해 비보책(裨補策)으로 당산나무를 심기도 했다. 비보책으로 심은 나무들이 훗날 거대한 숲을 이루었다.
오상조의 당산나무 사진에서는 신성한 존재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 신비감 외에 친근한 사람에게서 감지할 수 있는 정겨움이 묻어 나오고 있다. 당산나무에서 인간이 느껴진다고 하는 것은 사람과 나무와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곡성군 입면 탑동리 당산나무 옆 석장승의 부릅뜬 눈은 무섭다기보다 가까이 다가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정도로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화순군 이서 당산나무는 사람의 여러 형상의 얼굴모습을 보여준다. 무섭기도 하고 다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는 당산나무는 세상을 꿰뚫어 보는 도인의 풍모를 지녔다. 때로는 부처, 예수, 공자, 노자나 장자로 보이는가 하면 갑오년에 죽은 동학군이나 6‧25때 총 맞아 죽은 이웃집 할아버지로 보이기도 한다.
오상조의 당산나무 사진들이 엮은 이 사진집은 봄여름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를 모두 담아 내고 있다. 봄의 당산나무는 대지의 해빙과 더불어 아름다운 생명력을 드러내 보인다. 땅속에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하늘을 향해 생명의 기지개를 켜는 당산나무는 우주의 중심처럼 보인다. 이 무렵 자연은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다. 사람들은 당산나무가 파릇한 연초록 잎을 틔우는 모습을 보고 활기찬 봄기운을 느끼며 농사를 시작한다. 당산나무 잎을 보고 그 해 농사를 점치기도 한다. 여름에는 하늘을 덮을 듯한 짙푸른 신록에서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드리워진 시원한 그늘은 노동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이 되었다. 땀 흘린 사람을 위하여 늘어뜨린 당산나무 밑의 그늘은 아늑하고 평화롭다. 당산나무는 나무 자체만으로도 회화적 아름다움을 갖고 있기도 하다. 오래된 나무는 홀로 서 있어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녹음으로 하늘을 가득 덮은 한여름 당산나무의 흑백사진은 한 점의 수묵화처럼 문기(文氣)와 선미(禪味)마저 느껴진다.
당산나무는 가을이 되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린다. 까치집만 남겨 두고 잎을 떨쳐 버리고 앙상한 나목(裸木)이 된다. 봄부터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계속된 탄소동화작용으로 푸름을 지탱해 온 잎들은 엽록소가 빠져 노랗거나 주황색으로 물들었다가, 시나브로 바람에 흩날리거나 옴씰하게 땅에 떨어져 썩는다. 썩은 나뭇잎은 땅에 스며 이듬해 새싹을 피우는 자양분이 된다. 이 질서정연한 대자연의 순환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가을의 당산나무는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버릴 줄 아는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겨울 당산나무는 추사의 <세한도>에서처럼 인생의 의미를 느끼게 한다. 헐벗은 나목이 된 나무는 긴 겨울 쓸쓸한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낸다. 그러한 한겨울 당산나무는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잠들어 있을 뿐이다. 앙상한 몸으로 봄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는 첨단과학 문명시대이기는 하지만 당산나무는 여전히 시골의 마을 사람들에게는 신성한 존재이다.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행을 떠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한 그리움의 깃발이 되고 있으며,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꿈이 되고 있다. 오상조는 당산나무 사진들을 통해서 그것이 갖고 있는 여러 의미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 노트]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크고 작은 산들이 맥을 따라 아름다운 산세와 강줄기를 만들어 옛 부터 금수강산으로 불리워 왔다. 선조들은 사람들이 살만한 공간 크기에 따라 마을을 형성하고 삶의 터전 속에서 살아오고 있다.
마을의 지명도 주변 산세의 형태에 따라 작명을 하였고 음향오행설의 풍수지리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 땅의 기운이 부족하거나 너무 넘치는 곳에 비보책으로 당산나무를 심고 그 근처에는 각종 조형물인 돌무더기, 선돌, 솟대, 석장승, 목장승 등을 모셔 놓고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였다. 또한 당산나무가 마을의 재앙, 질병, 불행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신앙심과 공동체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 생각했으며 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그늘 밑에서 휴식 공간을 장마철에는 풍수조절과 북풍한설이 휘몰아 치는 겨울에는 방풍림의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당산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령스런 신목으로 모셔져 왔고 쉼터, 일터, 사랑방기능 여론형성과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당산나무 종류는 수명이 긴 느티나무가 대부분이고 팽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산나무 사진작업은 35년째 사진으로 기록하여 왔다. 마을 동구 밖에서 우뚝 서 있는 큰 당산나무를 통하여 알게 된 것은 단순한 거목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오랜 정서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민속학적인 역사성을 간직한 당산나무 사진작업에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거목의 당산나무를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서 최대한 느림의 미학으로 관조 하면서 촬영하기 위해 대형 목재 카메라와 흑백 필름으로 촬영한 후 젤라틴 실버 프린트 방식으로 제작하였다. 이는 수 백 년 이상을 살아온 거목에 대한 경외심 과 예우라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접하면서 알게 된 것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천, 지 인(天,地,人)의 조화로움이 있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보이는 사진철학에 근간을 두고 기록하게 되었다. 그 동안 천착했던 동구 밖에 외연히 서있는 당산나무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사진들이 한국적 원형의 사진으로 오롯이 남아 우리들 마음속에 안녕과 평화를 당산나무가 지켜 주기를 바란다.
2018 오상조
오상조 교수 작업실 방문한 한국여행사진작가협회 회원들